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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약주라는 것은 약효가 있는 것이라고 인정되는 종류의 술이거나 처음부터 특이한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약재를 넣고 빚은 술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는 좁은 의미에서의 약주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술밑을 여과해 만든 맑은 술을 약주라고 일컬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가 다시 변천해서 약주는 술의 높임말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약주의 전신
삼국시대에는 우리나라 스님 보리(保利)가 새술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이 새술이란 누룩을 써서 만든 것이고, 백제의 인번이라는 사람이 이 방법을 일본인들에게 전수한 것입니다. 일본의 고대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중에 고사기(古事記)를 살펴보면 응신천왕(AD270-312) 시대에 백제에서 인번(人番)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들어가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美酒)라는 것을 빚었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고 하며, 그 새로운 방법이 오늘날의 양조법과 다소 다르겠지만 누룩을 사용하여 양조한 청주와 약주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약주의 유래
약주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우선, 선조 때의 문신 서성(徐賂)에 얽힌 일화가 전해옵니다. 서성의 집에서 빚은 술이 서울 장안에서 가장 유명했는데, 그의 호가 약봉(藥峰)이었고, 그가 사는 곳이 약현(藥峴·지금의 중림동)이어서 좋은 맑은 술의 통칭이 약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에도 “서충숙공이 좋은 청주를 빚었는데, 그의 집이 약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집 술을 약산춘이라 한다”고 했다. 이 약산춘이 약주가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일설에는 중종 때 약현에 살았던 이씨 부인(서성의 어머니)이 남편을 잃고 술장사에 나섰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 ‘약현술집’의 술이 소문이 난 데서 약주가 유래했다고도 봅니다.

그 후 약주는 오랜 세월동안 각 지역의 양조장에서 각 지역의 특산물을 넣어 빚어 왔으며 각 지역별로 지역 나름대로의 전통주를 계승해 오고 있습니다.